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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1.06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1)


문늑, 오늘부터 생각날 때마다 노자의 도덕경 이야기를 하고 싶어졌다.
머리 속에 기억 되어 있는 것들을 끄집어 내는 관계로 오류가 있을 수 있겠지만....
맘 편하게 해 보련다.


노자는 약 2,500년전 사람이다. 너무 오래전일이라 정확하지는 않지만 ,
고서에 따르면 오나라인지, 제나라인지에 그 당시의 대석학(국립 대 학장쯤) 자리에 
老自 라는 사람이 있었다고는 한다. 그러나 그 사람이 도덕경을 쓴 노자인지 아닌지는 불확실하다. 

도덕경 역시 오래된 자료라 정확하게 누가 썼다고는 하기 힘들지만, 그 이후의 
노장사상의 발전으로 볼 때, 노자라는 사람이 쓰기는 했고, 그 이후 여러 후인들에 의해 편집이 된 듯하다.

1900년대 초에 중국에서 도덕경 죽간(대나무에 쓴 후 줄로 엮어 둘둘 말아놓은 책)본이 발견되어 신빙성을 더하게 되었다.   


노자와 도덕경의 배경은 대략 이러하고 ...
앞으로 나는 도덕경의 숨은 의미와 배경 등을 감안하여 가능하면 의역을 하고자 한다.

도덕경의 1장 첫머리에 나오는 말은 바로 이거다.


道 可 道  非 常 道  ( 도가도 비상도 )
名 可 名  非 常 名  ( 명가명 비상명 )

도를 도라 할 수 있다면, 그것은 항상 그러한 도가 아니다.
이름을 이름이라 할 수 있다면, 그것은 항상 그러한 이름이 아니다.



뒷 부분에 나오지만, 노자는 어떤 전체적인 System 혹은 체계, 혹은 우주의 법칙을 초월하는 법칙/존재에 대해
이름을 붙일 수 없기에 그냥 도(道) 라 하겠다고 한다. 

우리가 명칭 혹은 이름이라는 형이하학적 영역에 대상을 넣는 순간, 그 대상은 이미 한계를 가지고 만다.
예를 들어 홍길동이란 사람이 어느날 법원에 가서 개명 신청을 하여, 홍서범이 되었다고 한들
홍길동이란 개체는 변화되는 것이 아니다. 만약 당신이 A 라는 이름으로 40년을 살아왔는데, 갑자기 이름을 B로 변경한다고 해서 당신의 존재 자체가 바뀌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이름/명칭이 가진 형이하학적 한계이다.

그러나 노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보다 좀 더 심오한 듯하다.

이해를 돕기 위해 , 이 이야기를 한번 살펴보자.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엑소더스(Exodus)시키기 위해
모세를 선택하고 , 모세를 감람산으로 불러내어 너희 민족을 이끌라고 하신다.
모세가 어쩌구 저쩌구 하다가 묻는다.
 " 사람들이 나에게 누가 나를 보냈냐고 묻을진대, 내가 무어라 대답하리오리까 "
즉, 성경에서 처음으로 사람이 하나님께 이름을 묻는 장면인 것이다.

그 때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  NIV 버젼으로는 " I am who I am "

왜 !!! 하나님께서는 쉽게 이름을 가르쳐 주지 않으셨을까?  나는 여호와니라 . 하면 끝날 것을 왜 저리 어렵게 말씀하셨을까 ?   나는 성경의 이 구절에서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 이 생각났다. ( 절대 하나님과 노자를 같은 레벨로 보려는 건 아니다. 이해를 돕기 위할 뿐이다. )

하나님의 이름을 말하는 순간, 하나님이란 존재가 이 이름이란 형이하학적 영역에 한정될까바 그러신건 아닐까?
( 우리 나라 말에서 이름의 각 글자는 의미가 없다. 홍길동의 길을 따로 띄어내어 "길" 과 "동"을 아무리 살펴본들 그 존재를 정의해주는 힌트는 없다. 그러나 히브리어는 한 단어가 엄청 많은 의미를 갖는다. 그러므로 이름을 가르쳐 주는 것만으로도 한정된 여러 의미를 줄 수가 있다. 예를 들어 ll'h; 에는 다음과 같은 뜻이 있다.
[ 찬양하다, 명백해지다(소리에서 기원함, 그러나 보통 색에 사용) 빛나다; 따라서 자랑 삼아‘보이다, 자랑하다; (떠들썩하게) 어리석다; 정신없이 지껄이다; 사역동사 거행하다, ‘어리석어 보이게 하다, (자신을)자랑하다, 거행하다, 칭찬하다, 어리석게 대하다, 어리석게 만들다, (빛을)밝히다, 미치다, (미치게 만들다, 미친척 가장하다), 며느리(사위)로 삼다 ~로 주다, 찬양(~하다, ~할 가치가 있다), 격노하다, 유명한, 비치다 ] 등의 뜻이 있다. 도대체 한 단어에 어떻게 "찬양하다"와 "미친척 가장하다" 가 같이 있는 것인지........ -..-  암튼. ..

분명 노자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듯 하다.
어떤 영역/존재/법칙을 도라 할 수 있다면 ( 범위와 존재를 한정할 수 있다면 ) 그것은 이미 항상 그래왔던
그 영역/존재/법칙이 아니라고 볼 수 있다는 노자의 생각은 동감이 간다. 

 너무 어렵나?

그럼, 이렇게 설명하면 어떨까 ?  서로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한 연인이 있다고 치자.
너를 사랑해 라고 고백하는 순간을 떠 올려 보자.
나는 10가지의 고민과, 30가지의 어려움과 10가지의 쑥스러움에 50가지의 미래를 ( 합이 100가지 )
마음에 품고 너에게 "사랑한다" 고 어렵게 고백했는데,
헉! 상대방은 약 30가지밖에 못 받아들인거 같다.
차라리 고백하지 않고 있었으면, 상대방으로 하여금 이 쪽 마음을 끊임없이 상상하게 할 텐데,
내 입에서 고백이 쏘아져 나가는 순간, 상대방은 자기가 원하고 이해하고 싶은 것만 받아들이게 된다.

형이상학적 영역이 형이하학적 영역으로 질질 끌려 내려오며... 비참한 결과를 만들어 내는 상황이다.

다시 도덕경으로 돌아가보자.

노자는 "도는 이러이러한 것이다" 라고 말하는 순간, 그 문장 내에서 벗어나질 못하게 될 후대 사람들을 걱정한 것은 아닐까? 분명 그래보인다. 그렇기에 "도를 도라 할 수 있다면, 그것은 항상 그러한 도가 아니라 " 라고 역설적으로 설명하는 방법을 선택한듯 보인다.


처음이라 좀 쉽고, 짧게 가려 했는데..... ( 힘들어서 자주 못 쓰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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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