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작성 : 2008. 11. 17
마지막 업데이트 : 2010. 10. 24

제가 인터넷에서 퍼온 글 [ 내 남편이 될 사람은 http://philosophiren.tistory.com/2 ] 에 대해
트랙백을 받았습니다. 그 트랙백의 내용에 다시 제 생각을 더해봅니다.

- 원래 인터넷에 떠 돌던 글은 검은색
- ㄹㅇㄴㄹ 님께 받은 트랙백 의견은 녹색
- 제 생각은 보라색입니다.
- 여린내기 님께 받은 피드백은 주황색입니다.

월급은 많지 않아도 너무 늦지 않게 퇴근할 수 있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퇴근길에 동네 슈퍼 야채코너에서 우연히 마주쳐 웃으며
저녁거리와 수박 한 통을 사들고 집까지 함께 손잡고 걸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는,
월급이 많지 않으면 안 된다. 언제나 나는 가난이 두렵다.
'월급이 많지 않아도' 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렇게 말하는 순간, 정말 나는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될까
그것이 두려워서 그렇게 말도 하지 못 할 정도로, 나는 가난이 두렵다.
가난은 사랑을 집어 삼키게 될 것이다.
나의 가난은 나의 사랑을 집어 삼켜, 당신을 언제 사랑했냐는 듯 모른 체 할 것이다.
그런 내가 두려워, 나는 또한 가난이 두렵다.

하지만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내가 사랑했던 남자들은 언제고 가난했다는 데에 있다.
나는 당신의 풍요를 이해할 수 없는 사람, 당신의 풍요를 이해하지 못 하는 내가 두렵다.

젊을 때부터 하루 16시간을 일해 큰 돈을 벌어 45살에 풍족하게 은퇴할 수 있는 사람과,
젊을 때부터 하루 8시간만을 일하고 60살까지 일해야 하는 사람을 놓고
나는 언제나 전자를 선택한다. 문제는 16시간 이라는 물리적 노력이 결코 풍요를 담보하지 못한다는데 있다.

나는 가난 보다 가난에 적응해가거나, 가난을 당연시 받아들이거나, 그 안에서 헤어나지 못할까 두렵다. 
벗어나려는 몸부림이 엉킨 그물처럼 더욱 나를 옮아맬까봐 더욱 두렵다.

나 또한

월급이 많지 않으면 안 된다. 아이를 키우면서 참 힘든 순간이 많았고, 지금도 그러하다. 그럴 때마다 일을 접어야 할까 하는 갈등을 한다. 그러나 결론은 항상 같다. 내가 순간순간 선택해야만 하는 사안에는 돈과 연결된 것이 매우 많다. 그때마다 돈을 이유로 망설이고 싶지 않다. 사랑도 물질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리고

내가 사랑했던 남자들 또한 가난했었다. 가난에 적응해가거나, 가난을 당연시 받아들이지 않는, 건강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어떻게 해서든 헤쳐 나올 수 있다.

그 남자들은 지금 이제 더 이상 가난하지 않다.



집까지 걸어오는 동안 그 날 있었던 열받는 사건이나 신나는 일들부터 오늘 저녁에는 뭘 해 먹을지,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말하고 들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러게, 나도
정말 그런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

내가 회사에서 있었던 어려운 일을 말해도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사회 생활을 알고 있는 여인이 좋다.
내가 어려운 일이건 시시콜콜한 일이건 이야기 해 줄때, 그 말이 끝날 때까지 묵묵히 들어줄 수 있는 여인이 좋다.

그렇게 해줄께.


그렇게 들어와서 함께 옷을 갈아입고 손만 씻은 채,

한 사람은 아침에 먹고 난 설거지를 하고 한 사람은 쌀을 씻고 양파를 까고 찌개 간도 보는 싱거운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는,
남편이 일하고 집에 돌아왔다면 아침에 먹은 설거지 정도는 깨끗하게 해 놓았을 아내이고 싶다.
그렇지만, 싱거운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남편이 하는 싱거운 농담에, 무슨 그런 농담이 다 있느냐며 하나도 재미없다고 타박하다가도
몰래 품에 안기며 당신의 농담은 하나도 재미없지만, 당신을 사랑하는 일은 재밌다고 말하는,
그런 아내이면 좋겠다.

비싼 음식보단 정성이 가득 담긴 음식을 준비해 주는 여인이 좋다.
간혹은 스파게티나 라쟈냐를 만들어 주는 남편이고 싶다.

삶이 분주할 때, 왜 나만 가족들을 위해 음식을 해야 하나 하는 투정을 부린 적이 많았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최근 몇 해, 매일매일 요리를 하지만, 정성이 담뿍 담은 음식을 준비해본 기억이 없다. 미안하다.

그래도 간혹은 요리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다 먹고 나선 둘 다 퍼져서 서로 설거지를 미루며
왜 네가 오늘은 설거지를 해야 하는지, 서로 따지다가 결판이 안 나면 가위바위보로
가끔은 일부러, 그러나 내가 모르게 져주는 너그러운 남자였으면 좋겠다.

 그러게, 나도
정말 그런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

설거지는 그냥 내가 한다. 설거지 할 때, 말하지 않아도 옆에서 내 취향의 커피를 타주는 여인이 좋다.

매번은 아니지만, 설거지는 자기하겠다고 한다. 그럼 나는 당연하지라고 하면서도 내가 하곤 한다. 그러면 내 취향에는 맞지 않지만, 커피를 타주는 다정다감한 남편이 있다. (그라나 남편이 타주는 커피는 항상 한강이다. 절반은 버린다^^)



주말 저녁이면 늦게까지 TV 채널 다툼을 하다가 한 밤중에 반바지에 슬리퍼를 끌고
약간은 서늘한 밤 바람을 맞으며 함께 비디오를 빌리러 가다가
포장마차를 발견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뛰어가
떡볶이에 오뎅 국물을 후룩후룩
"더 먹어.", "나 배불러."해 가며 게걸스레 먹고서는
비디오 빌리러 나온 것도 잊은 채 도로 집에 들어가는,
가끔은 나처럼 단순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는
떡볶이를 먹었다고 해서 비디오 빌리러 나온 것을 잊는 사람이 아니다.

나도다. 그러나 가끔 행하는 단순함은 나의 휴식이 될 것이다.

TV 채널 다툼을 할 정도의 TV애착이 있어봤으면 좋겠다. 그것도 알콩달콩 할 것 같다.


어떨 때는 귀찮게 부지런하기도 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일요일 아침, 아침잠에 쥐약인 나를 깨워 반바지 입혀서 눈도 안 떠지는 나를 끌고 공원에 가는
자상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는
일요일 아침, 아침잠에 쥐약인 나를 깨워 밖에 끌고 가는 남자를 자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침 시간을 함께 활용할 수 있는 여인이 좋다. 새벽 5시에 같이 일어나 새벽기도를 가고, 그 후에 같이 운동을 하고, 그 후에 정말 향이 좋은 커피를 함께 마시며, 책을 읽을 수 있는 여인이 좋다. 남편이 출근하는데, 머리를 산발해서 베게 속에 머리를 파 묻고 자고 있으면, 정말....... 그대로 파 묻어 놓고 싶다.

산책을 나는 참 좋아한다. 누가 먼저인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누구라도 원한다면 밝은 모습으로 그래라고 하고 따라 나서면 그만이다. 남편이 출근하는데, 머리를 산발한 건 미안하다.^^



오는 길에 베스킨라빈스에 들러 피스타치오 아몬드나, 체리 쥬빌레나 내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콘을 두 개 사들고
"두 개 중에 너 뭐 먹을래?" 묻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는
내가 먼저 가게에 들어가 먹고 싶은 것을 고르는 사람이다.

먹고 싶은 것을 당당하게 고르는 것은 멋진 일이다. 하지만 자기 것만 사 먹는 사람은 싫다.

저런 얘기를 들으면 미식가가 낭만적인 것 같다. 미식가이고 싶어진다. 노력하면 되는 것일까?



가끔 친엄마를 대하듯 농담도 하고, 장난쳐도 버릇없다 안 하시고,
당신 아들때문에 속상해하면 흉을 봐도 맞장구치며 들어주는
그런 시원시원한 어머니를 가진 사람.
피붙이같이 느껴져 내가 살갑게 정 붙일 수 있는 그런 어머니를 가진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러게, 나도
그런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

가끔이다. 저 위의 내용에서 중요한 것은 가끔이다. 누구도 언제나 그럴 순 없다.

가끔이다. 저 위의 내용을 바라는 것 자체가 인생사를 역행하는 것이다. 있는 사실은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는 것이 신상에 좋다. 안 그러면 크게 다친다.



아이의 의견을 끝까지 참고 들어주는 인내심 많은 아빠가 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어른이 보기에는 분명히 잘못된 선택이어도 미리 단정지어 말하기보다
아이가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묵묵히 기다려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러게, 나도
그런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
묵묵히 기다려주지 못 하는 나를 대신해, 아이의 말을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자꾸 그러면 나는, 아이가 내 마음을 알아주지 못 한다고 서운해 할 사람이니
그런 기다림을 내게 가르쳐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기다리는 법을 가르치는 것, 사랑 받는 법을 가르치는 것, 사랑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
그것이 내 역할이다.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빨리빨리를 외친다. 그러나 정작 아이들이 엄마(혹은 아빠) 이것 좀 봐봐요?” 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좀만 기다려라고 한다. 반성한다. 미안하다 얘들아~.


가끔씩 약해지기도 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아직껏 품고있는 자기의 꿈 이야기하든지 그리움 담긴 어릴 적 이야기라든지
십 몇 년을 함께 살면서도 몰랐던, 깊이 묻어두었던 이야기들을
이젠 눈가에 주름이 잡힌 아내와 두런두런 나누는 그런 소박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는
소박한 남편을 만나고 싶지 않다. '희망'보다는 '야망'을 가진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나는 그런 남편을 만나면 내가 외로워질 것을 안다.
나는 내가 입을 수 없는 옷을 사려고 한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내게 그 옷은 참을 수 없이 아름답다.

나는 야망을 가졌던 남자였다. 야망을 위해서는 결혼 생활 따위는 던져버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제, "야망"과 "현실"의 줄다리기를 잘 하는 사람이고 싶다.
그리고 나는 이야기 듣기를 좋아한다. 나에게 이야기를 해 주는 사람이 좋다.

가끔씩 약해지는 것은 괜찮다. 가끔씩 야망을 보이는 것도 괜찮다. 그러나 어느쪽이든 계속은 안 된다. 그 계속을 멈추었을 때 두 사람의 사랑 또한 멈출지도 모른다.


어떤 경우에도 자신을 던져버리지 않는 고지식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무리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지켜나가는 사람,
술자리가 이어지면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를 할 줄 아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러게, 나도
그런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 하지만 자신의 고집을 지키되, 융통성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것으로, 자꾸만 다투고 마는 나를 보듬어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짜증을 내고, 화를 내고, 다투다가도 ....
내가 보듬어 줄 때는, 조용히 수긍하고 살며시 안길 수 있는 여인이 좋다.

가볍게 종종 사랑 싸움을 걸어 주는 사람이였으면 좋겠다. 그래서 자주 나를 보듬어 주었으면 좋겠고, 그렇게 사랑 확인을 지속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내가 그의 아내라는 것을 의식하며 살 듯,
그도 나의 남편이라는 것을 항상 마음에 새기며 사는 사람,
내가 정말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사람,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은지 많은 날 이야기를 해 왔다.
하지만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과 한 치 닮은 것이 없더라도,
내가 원했던 모든 것을 바꾸어도 괜찮을 만큼,
내가 원했던 것을 기억하지도 못 할 만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 하지만 역시 결혼은, 두 번째로 사랑하는 사람과 하고 싶다, 아직은.
내 희망이 그 사랑에 있는데, 그것이 현실이 되어버려, 내가 점점 무디어지거든
견딜 수 없을까,
나는 그것이 아직도 두렵다.

완벽하게 맞는 사람과 만나고 싶지 않다.
완벽하게 내가 원했던 사람과 만나고 싶지 않다.
내 모든걸 바꾸고 버려야 할 만큼 사랑하고 싶은 사람과도 만나고 싶지 않다.

서로 마음을 모아 가까워지려 노력하는 사람.
서로 맞추려고 노력해 나갈 수 있는 사람.
서로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는 사람.
그런 사람과 함께이고 싶다.


완벽하게 내가 원했던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키 크고, 악기 하나쯤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을 꿈꿨었다.

그러나

완벽하게 잘 맞는 사람이였다.

내 마음이 다치지 않게 해 주는 사람이였다.

내 의견을 모두 들어주는 사람이였다.

그런 사람을 곁에 둔 나는 풍족한 사랑을 많이 받았다.

다만 나의 욕심이 넘쳤을 뿐.



인터넷에 떠 돌던 글, 누군가가 내개 준 트랙백, 내가 더한 내 생각, 또 다른 누군가가 더한 생각...
이렇게 4개의 생각을 모아놓고 보는 것도 괜찮은것 같다.
계속 누군가가 이 글에 의견을 더해준다면, ......... 나중에 책으로 내도 되겠다.
ㅠ..ㅠ

Philosophi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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