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 룸푸르, 푸두라야 버스터미널 -

11월 22일 토 6:00am

일년 내내 푹푹 찌는 말레이시아의 아침 6시는 대낮처럼 환했다. 그리고 말레이시아의 수도 Kuala Lumpur 시내 한 복판에 있으며, 바로 길 건너에는 KL에서 가장 좁은 길에서 가장 많은 제품을 팔아치우는 China Town이 있는 그 곳에 바로 KL 최대의 Puduraya 버스 터미널이 자리하고 있었다. 하루에도 수백대의 버스가 지하의 플랫폼으로는 들락날락하고, 1층에는 표를 구매하려는 이들이 인산인해를 이루며, 2층에는 24시간 오만가지 음식을 파는 푸드코트가 있는 곳. 성빈은 여길 올 때마다 땀 냄새에 인상을 쓰지만, 삶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한국으로 치면 종로 2가 사거리 옆에 남부 버스 터미널을 가져다 놓은 것 같았다. 성빈은 15분 전 도착하여 Nasi Lemak (말레이시아식 주먹밥) 으로 아침을 떼우고 있었다. 이제 이걸 먹고 차이나타운에서 진품과도 구분 못할 정도로 정교한 가짜를 사서 KL Central 에서 KLIA(쿠알라 룸푸르 국제 공항)까지 넌스톱으로 기차를 탈 생각이다. 그리고 비행기를 타고 뉴질랜드로 가면 사랑하는 혜원이 기다리고 있을 터, 차이나타운에서 산 가짜를 진짜라고 말해도 믿을 것이다. 어차피 전문가들도 구분 못하는 정교한 제품아닌가. 큭큭 그런 생각으로 웃고 있던 그 때, 누군가가 순간적으로 성빈의 오른쪽 팔을 뒤로 꺾었다.

왼손으로는 뒷머리를 잡아 고개를 뒤로 젖힌채, 한쪽으로 밀고 가는 것 아닌가. 얼굴을 볼 수 없는 뒤 사람은 주변의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성빈을 계속 한 쪽 구석으로 밀고 갔다. 정의심 강한 한국이라면 누군가가 나서서 무슨 일이냐고 물어줄텐데, 신고 정신 강한 캐나다라면 누군가가 신고라도 해 줄텐데, 제길 여긴 말레이시아 아닌가. 내가 이 자리에서 칼을 맞아도 아마 아무도 경찰을 부르지 않을 것이다. 오른팔과 머리가 뒤로 제껴진 상황에서 성빈이 할 수 있는 것은 생각밖에 없었다. 가던 방향을 생각한 성빈은 저 방향이 화장실인 것을 알았다. 쿡쿡 성빈은 속으로 웃었다. 말레이시아의 공중 화장실은 돈을 받는다. 푸하하하. 터미널 안의 화장실, 대형 쇼핑몰 안의 화장실까지도 50센트에서 1링깃을 받는다. 뒤에 있는 것이 누군지 모르겠으나 오른팔로는 내 팔을 꺾고 왼 팔로는 내 뒷머리를 움켜 잡은채 , 화장실 앞에서 어쩔 것인가. 성빈은 어깨의 아픔보다 점점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아야했다.

남자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많은 곳을 지나 화장실로 들어가는 모퉁이를 꺾어지니 화장실 앞에 책상을 하나 놓고 앉아서는 웬 할아버지가 자기를 가로 막고 있는게 아닌가. 돈을 내라는 것이었다. 그 할아버는 그 남자가 웬 남자를 거의 납치 수준의 자세로 끌고 가고 있는 것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2명이니 40센트를 내라고 한다. 이유를 불문하고 화장실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한 사람당 20센트를 내야 한다고 설명까지 곁들인다. 그 남자는 이 상황이 믿을 수가 없었다. 남자는 할아버지를 걷어찰까도 생각했지만, 바로 옆에서 대걸레를 밀고 있는 또 다른 할머니까지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 맘에 안 들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때려 눕히고 한 남자를 납치하듯 화장실로 끌고 들어가면 시끄러워질터였다. 순간을 고민하던 남자, 성빈이 지금까지 얌전히 따라 온 것을 생각해 내고는 성빈의 귀에 조용히 말했다.

“ Listen. Carefully “ 그건 네이티브 엑센트였다. 그렇지만 미국 발음처럼 저속적으로 가볍지도 않았고, 영국처럼 딱딱하지도 않았다. 남자가 성빈의 귀 가까이 조용히 그 말을 할 때, 성빈은 자유로웠던 왼 손을 이용해서 남자의 안면을 가격했다. 지금까지는 멀어서 왼 손으로 어찌 할 수가 없었지만, 내 귀에 속삭일 정도로 내 얼굴과 가까운데 무엇이 문제랴. 왼 손을 펴서 상대방은 두 눈과 코 부분을 가격하는 순간, 왼 손 검지가 상대방의 눈을 살짝 찌른 것이 느껴졌다. 순간 기습을 당한 남자의 오른팔에서 힘이 빠지자 성빈은 몸을 오른쪽으로 빼내며 오른손으로 상대방의 목을 가격했다. 남자는 왼 손으로는 눈을, 오른손으로는 목을 감싸 쥐고는 털썩 무릎을 꿇고 고객을 숙이자 그의 목 뒤에서 예의 그 알마니 로고가 보였다. 입국할 때 본 그 남자가 자신을 공격했는지 알 수 없으나, 이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이제는 내가 가해자가 된 상황아닌가. 그것도 말레이시아 현지의 할아버지 , 할머니 앞에서.

성빈은 터미널 건물의 왼쪽 모퉁이를 돌아 나와 길을 건너 차이나타운으로 들어갔다. 차이나타운이 끝나기 전 있는 왼편의 샛길로 나오자 다시 그 터미널의 뒷편이 보였다. 주변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터미널 뒤 쪽에 있는 Puduraya 전철역으로 간 성빈은 이제 전철을 타고는 KL Central 로 가서 공항으로 갈 거다. 그럼 이 남자도 다시 볼 일 없다.  

Vincent는 말레이시아의 공중 화장을 저주했다. 이 버스터미널의 넘치는 인파도 저주했다. 자신을 공격하고 도망간 동양인 남자도 저주했다. 그리고 국경을 넘을 때 정장을 벗고 모바일을 꺼내 놓은 자신을 가장 많이 저주했다. 출입국사무소에서 도장을 고치고, 버스에 탄 후 10분쯤 지나서였다. 아직 푸켓에 있을 Tim에게 자신의 위치를 알려주기 위해 모바일을 꺼낸 빈센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마침 방금전에 공장에서 출시된듯한 광택이 번쩍이는 새 제품 SAMSUNG i780이었다. 불길했다. 이건 내 것이 아니다. 전화번호에는 아무 번호도 없다. Txt, email 아무것도 없다. 카메라로 찍은 사진 한 장 없으며, 심지어 SD Memory 란도 비어있다. !!! 입국 수속 사무소에서 그 옆의 동양놈과 모바일이 바뀐것이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지금 가지고 있는 것 중 제일 중요한 것은 그 모바일이고 그래서 책상 위에 올려 놓았지만,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만약 누군가가 그 모바일을 잡으려고만 했으면 손목을 분질러 버릴 생각이었다. 근데 어디서 모바일이 그 동양놈과 바뀐거란 말인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신이 일어나서 모바일을 움켜쥐려는 순간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보니, 그 순간에 입국사무소 직원놈이 움직여서 책상위의 서류들이 밀리는 것을 언뜻 본 기억이 난다. 버스는 논스톱으로 KL을 향해 달리고 있고, 지금은 밤 12시다. KL까지는 몇몇 도시를 제외하고는 거의 밀림 수준이다. 그 놈도 KL에 도착하기 전에 버스를 내릴 일은 없을 것이다. 만약 내린다면 정말 밀림에 갇힌 타잔처럼 될지도 모를일이었다.

그래! 어차피 그 동양 사내놈도 KL의 Puduraya 버스 터미널로 갈 것이다. 비슷한 시각에 도착할테니,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놈은 분명 내게 내일 출국한다고 했다. 일단 Tim에게 보고한 후에, 팀을 꾸리면 어제 입국해서 내일 출국한 동양인 리스트 정도는 구할 수 있다. 그 놈 여권은 녹색이었지. 녹색 여권을 가진 나라로 추리고 나면 일은 더 쉬워질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하지 맘이 좀 편해졌다.


빈센트가 탄 버스는 성빈과 거의 같은 시간에 Puduraya 터미널에 도착했다. 이 복잡한 곳에서 성빈을 찾을 일이 걱정이었는데, 그 놈이 저 앞에 서서 주먹밥을 어그적 어그적 먹고 있는게 아닌가. 뒤따를까 하다, 이 복잡한 인파속에서 놓칠수도 있고, 시간이 얼마나 걸리게 될지도 몰랐다. 과감한 행동력이 필요할 때였다. 빈센트는 소리 없이 다가가 그의 오른팔과 뒷 머리칼을 순식간에 잡아 챘다. 모바일이 바뀌는 바람에 꼬이는듯 했지만, 그 동양놈을 금방 발견해서 기분이 좋았다. 화장실로 끌고 가, 모바일을 돌려 받으면 그뿐이었다.

빈센트는 기분이 좋아져서 그 놈의 모바일을 돌려줘야지 까지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데 이 빌어먹을 화장실 입장료 때문에 그 놈이 도망을 간 것이다. 그는 또 터져 나오는 욕을 참았다. 도청을 방지하는 자신의 모바일이 없는 상황에서 가장 안전한 방법은 미국의 CallBack 시스템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빈센트는 미국으로 전화를 했다. 띠디디 띠디디 두 번이 울리고는 찰칵 소리 후에 다시 번호를 눌러 달라는 삐- 소리가 들렸다. 그는 그 상태에서 그대로 다시 태국에 있는 Tim 에게 전화를 걸었다. 일단은 상황을 알려야 했다.

“Project Kairos에 문제 발생. SD탈취. 21일 입국하여 22일 출국하는 녹색 여권을 소지한 모든 동양 남자의 행방을 확보 바람. AK에 백업팀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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